시 시편 시편, Lýsing
시편은 노래가사 또는 시 모음집이다. ‘시’는 그리스어로 ‘찬양노래’라는 뜻이다. 많은 시들이 찬양노래이다. 그러나 시들이 아닌 것도 많다. 어떤 시들은 찬양이 아니라 불평으로 가득 차 있다. 많은 다양한 종류의 시들이 있다. 시 하나하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시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또는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많은 시들이 저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어떤 시는 즐거운 세상에서의 행복한 삶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시에서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창조한 대로 잘되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시편 1편은 다음과 같은 삶을 경험하라고 초대한다. “큰 축복들은 악한 사람의 꾀를 따라 살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사랑하는 데 있다.” 이러한 행복을 노래한 시들에서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의 축복들을 누린다. 반면 악한 사람들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이러한 시들은 하나님에게 순종할 때에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가에 대해 노래한다. 이러한 시들에서 악한 사람들은 고통을 당한다.
그러나 종종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선한 사람들도 고통을 당한다. 그들도 병으로 고생하고 가난하게 살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는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에 대한 시들도 있다. 그 시들은 삶의 괴로움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표현한다. 그렇게 고난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호소하고 정의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충격적인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시편 137편이 바로 그러한 시다. 그 시는 바빌론에서 포로의 삶을 살고 있는 유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시는 원수들에게서 당하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비애와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고통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은 항상 좋은 일만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시편 137편은 바빌론 주인들의 자식들을 죽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내리기를 기원하면서 끝을 맺는다.
하나님의 길을 배운 사람들은 당연히 이러한 말에 당황한다. 그러나 한 번도 잔혹한 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우리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도 표현해서는 안 되는가? 그렇다, 안 된다. 시편 137편은 모범 사례의 기도가 아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분노의 말들은 하나님이 한 말이 아니다. 그 말들은 순수한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들은 부당하게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그들의 정서를 하나님에게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새로운 삶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러한 일에 대한 시들도 있다. 시편 30편의 저자는 고난에서 건져준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그의 병을 낫게 하시고 죽음에서 구해주셨다. 이러한 시들은 우리가 역경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기쁨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역경을 통과하면서 슬픈 노래를 부르던 사람일수록 이러한 시를 더욱 더 좋아한다.
시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쓰인 많은 다양한 종류의 노래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열려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의 다른 시기마다 이 시들은 유의미하며 도움을 준다.